【칼럼】만성질환,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박명윤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5/06/25 [09:52]

【칼럼】만성질환,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박명윤 논설위원 | 입력 : 2025/06/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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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만성 질환(慢性疾患)은 모두 혈관의 손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고혈압(高血壓)은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할 경우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심부전, 신부전, 실명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고령일수록 유병률이 높고, 합병증의 위험이 커지므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한 세계 고혈압 보고서인 ‘고혈압에 관한 세계 보고서: 침묵의 살인자와 벌이는 경쟁(Global Report on Hypertension: The Race Against a Silent Killer)에 따르면, 전 세계 고혈압 환자 중 절반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환자 5명 중 1명만 혈압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고혈압학회(Korean Society of Hypertension)가 발표한 ‘고혈압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국내 고혈압 환자는 약 13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 세 명 중 한 명꼴로 고혈압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20-30대 고혈압 유병자는 89만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15%도 안 되는 13만명만이 고혈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고혈압은 대부분 증상이 없고, 젊은 환자일수록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기간 높은 혈압에 노출되면 남녀노소(男女老少)를 가리지 않고 심뇌혈관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젊은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 심부전 등으로 두통,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면서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오곤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통계에 의하면, 고혈압 환자는 2019년 631만7663명에서 2022년 727만3888명으로 최근 5년간 약 15% 증가했다. 이들 가운데 가면고혈압과 백의고혈압의 발생률은 각각 10%와 20% 정도이다. 평소 혈압은 정상이지만 병원에서 혈압이 잴 때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경우를 ‘백의(白衣)고혈압’이라하며, 반대로 평상시엔 고혈압이지만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할 때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를 ‘가면(假面)고혈압’이라고 한다. 

‘가면고혈압’은 마치 혈압에 아무 문제없는 듯 ‘가면’을 쓴 고혈압을 말한다. 즉 병원에선 정상 혈압으로 측정됐는데, 실제로는 고혈압인 경우를 말한다. 가장 흔한 이유는 평균 혈압이 높은데도 혈압을 여러 번 잰 후, 가장 낮게 나온 경우를 내 혈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침에 최고 혈압을 기록했다가, 병원에서 혈압을 잴 때는 하루 중 혈압이 가장 낮은 시점이거나 안정 상태인 경우가 많아 혈압이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백의고혈압’이란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앞에서 유독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평소 혈압이 정상인 사람이 의사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불안해하면서 혈압 측정치가 실제 혈압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다. 병원에서만 혈압이 높게 나오는 데는 ‘혈압이 높을까 봐 또는 병이 있을까 봐’하는 걱정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의고혈압을 실제 혈압으로 오인해 불필요하게 고혈압 약을 처방 또는 증량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정확한 혈압 측정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140/90mmHg 이상이거나, 가정에서 측정하였을 때 135/85mmHg를 넘을 때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혈압은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잠들기 전 등 일정한 시간대에 측정하는 것을 권장한다. 가정에서 혈압을 잴 때는 휴식 상태, 소변을 비우고 카페인, 흡연, 운동으로부터 30분 이상 지난 상태에서 측정하는 게 좋다. 양팔의 혈압 측정치가 다르면 ‘높은 쪽’을 기준으로 삼는다. 

대한고혈압학회와 미국심장학회의 혈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정상 혈압: 수축기 혈압 120mmHg 미만, 확장기 혈압 80mmHg 미만. △고혈압 전 단계: 수축기 혈압 120-139mmHg, 확장기 혈압 80-89mmHg. △1기 고혈압(경도 고혈압): 수축기 혈압 140-159mmHg, 확장기 혈압 90-99mmHg. △2기 고혈압(중등도 이상 고혈압): 수축기 혈압 160mmHg 이상이거나, 확장기 혈압 100mmHg 이상. 

고혈압은 본태성(本態性)고혈압과 이차성(二次性)고혈압으로 나뉜다. 전체 고혈압 환자의 약 90% 이상은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본태성 고혈압(essential hypertension)이다. 유전적 요인을 비롯해 흡연, 과음, 짜게 먹는 식습관, 운동 부족, 스트레스, 비만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반면 이차성 고혈압(secondary hypertension)은 신장(腎臟) 질환, 내분비계 이상, 혈관 기형 등 뚜렷한 원인이 있는 경우다. 

고혈압의 가장 심각한 합병증은 뇌출혈(腦出血)이다. 이는 고혈압으로 인해 미세한 뇌동맥이 파열됨으로써 피가 뇌 조직을 손상시켜 일어나는 현상이다. 뇌졸중(腦卒中)이 발생하면 반신불수, 언어 장애, 기억력 상실, 치매 등이 나타난다. 뇌졸중 환자의 약 80%에서 고혈압이 나타나므로 뇌졸중 예방을 위해 고혈압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고혈압이 지속되면 심장(心臟) 근육이 비대해지고 기능이 저하된다. 그 결과 운동할 때 호흡 곤란을 느끼고 부정맥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혈압은 흡연, 고지혈증과 함께 동맥경화증의 3대 발생 위험 인자로 꼽힌다. 혈관이 고혈압으로 손상되면, 백혈구 및 혈소판 등이 손상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반응하여 동맥경화를 유발한다. 고혈압을 방치하면 초기에는 단백뇨(蛋白尿) 증상이 나타나며, 점차 악화되면 신부전증, 요독증(尿毒症) 등이 나타난다. 

치료는 비약물요법과 약물요법을 병행한다. 고혈압 전 단계에서는 체중조절, 식이요법, 운동 등 비약물적 치료를 먼저 권장한다. 하지만 혈압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거나 합병증 위험이 큰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혈압약 복용 초기에는 두통, 어지럼증, 기침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완화되고, 필요한 경우 약물을 조절해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체중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체중, 비만, 복부비만 등은 고혈압을 악화시키고,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금연(禁煙)과 절주(節酒), 충분한 수면(7-8시간), 스트레스 완화 등도 혈압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스트레스는 교감신경(交感神經)을 자극해 혈압을 상승시킬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명상, 취미활동, 호흡조정 등)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대한고혈압학회가 권장하는 고혈압 예방을 위한 7가지 생활수칙은 다음과 같다. △음식을 골고루 싱겁게 먹는다. △살이 찌지 않도록 알맞은 체중을 유지한다.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한다. △담배는 끊고 술을 삼간다. △지방질을 줄이고 채소를 많이 섭취한다. △스트레스를 피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 

고혈압은 ‘소리 없는 죽음의 악마’라고 할 정도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뚜렷한 증상이 없어 신체검사나 진찰 중에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혈압을 방치하면 건강한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그러나 고혈압은 정기적인 혈압 측정과 올바른 생활습관 실천을 통해 충분히 예방하고 조절할 수 있다. EP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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