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1440주년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

이코노믹포스트 | 기사입력 2017/07/12 [10:47]

창건 1440주년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

이코노믹포스트 | 입력 : 2017/07/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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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황영화기자]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 특별전이 18일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설에서 개막한다. 2000년 이후 15차례에 걸쳐 왕흥사터에서 발굴한 유물 9800여점을 선보인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자리잡은 잡은 백제 왕흥사는 577 정유년에 세워진 절이다. 일제강점기에 ‘왕흥(王興)’명 기와가 수습되면서 백제의 왕흥사터로 밝혀졌다. 2001년 사적 제427호로 지정됐다.

 전시는 ‘위덕왕, 왕흥사를 세우다’로 출발한다. 왕흥사, 특수 기와, 명문 기와, 왕흥사지 가마터 등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위덕왕, 사리기에 마음을 새기다’에서는 출토유물인 사리기와 사리장엄구 등을 통해 인간 위덕왕의 고난과 역경, 업적 등을 살핀다. ‘왕흥사, 고려 시대로 이어지다’에서는 고려 시대 왕흥사의 운영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왕흥사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로 2000년 시작된 왕흥사지 발굴조사와 연구성과를 알리고, 사리기와 치미의 복원 연구 과정을 조명한다.

 사리기와 대형 치미가 특히 관심대상이다. 2007년 발굴된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보물 제1767호)은 청동으로 만든 원통모양의 상자(盒) 속에 작은 은제 항아리(壺)를 담고, 그 안에 다시 금제 병(甁)을 넣어 3중으로 사리를 봉안한 유물이다. 가장 바깥에 있는 청동 상자의 단단한 표면에는 29자를 정성스럽게 새겨 창건연대와 목적 등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위덕왕(창왕·재위 554~598)이 죽은 아들(왕자)을 위해 577년 왕흥사를 건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왕이 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 왕흥사를 방문, 향을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아시아 전통건축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치미(鴟尾)는 지붕의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는 기와다. 품격이 높은 대형 건물에 주로 설치했으며 귀신을 쫓는 구실도 했다.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는 높이 123㎝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름모꼴의 꽃장식인 연화문(蓮花紋), 구름문, 초화문(草花紋) 등의 화려한 문양, 전체적으로 꼬리 부분이 하늘로 향하도록 날카롭게 표현해 새가 꼬리를 세워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순할 수도 있는 지붕장식을 화려함과 위엄을 갖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백제 최고 수준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파손된 채 수습된 조각 118개를 보존 처리하고 3D 로 복원했다. 치미 복원 관련 영상과 사진도 볼 수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주헌 소장은 “올해는 왕흥사지 창건 1440주년이 되는 해이자 왕흥사가 건립되던 정유년으로 이번 특별전은 이를 기념하고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의 위상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됐다”고 전했다.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하는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는 10월9일까지 계속된다.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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