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곡물자급률 마지노선 붕괴

벼랑 끝에 선 식량안보

박명윤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7/26 [08:37]

[칼럼] 곡물자급률 마지노선 붕괴

벼랑 끝에 선 식량안보

박명윤 논설위원 | 입력 : 2024/07/26 [08:37]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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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포스트=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우리나라 곡물자급률(穀物自給率)의 심리적 마지노선(Mainot Line, 최후의 방어선)인 20%가 붕괴되었다. 곡물자급률(self-sufficiency rate of grain)이란 곡물 총 소비량 중에서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곡물의 비율이다. 특히 곡류만을 다루어 자급률을 문제 삼는 것은 곡류가 직접소비, 간접소비(축산의 사료용)를 포함해서 식량의 기본이고, 실질적인 식량자급률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농업’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3년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에서 소비하는 곡물의 80%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한 셈이다. 2008년 31.3% 대비 무려 11.8%포인트나 급락했다. 농업선진국이라고 부르는 호주(338.8%), 캐나다(169.9%), 미국(122.4%)은 모두 세 자릿수 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변국인 중국(92.2%)과 일본(27.6%)과 비교해도 꼴찌다. 일본의 곡물자급률은 27.6%로 2008년 대비 0.1%가 높아졌다. 2008년 당시 일본보다 3.8%포인트 높았던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8.1%포인트 차이로 역전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식량안보(食糧安保)에 대한 불감증이다. 

 

‘식량안보’란 재난, 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해 적정한 수준의 식량을 항상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을 둘러싼 최근 국제 정세는 우리나라 같은 식량 수입국에 더욱 위협을 가한다. 과거와 달리 글로벌 푸드체인 붕괴로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 중단·제한 조치 등을 선언하면서 식량민족주의(food nationalism)가 가열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 수입국은 자본이 있어도 충분한 식량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국내 곡물 수요량 2300만t 가운데 18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7대 식량 수입국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료용을 제외한 국내 식량자급률은 49.3%, 사료용을 포함한 국물자급률은 22.3%다. 쌀 자급률은 100%를 넘지만, 밀 옥수수 콩의 자급률은 각각 0.7%, 0.8%, 7.7%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을 기점으로 계속 악화하는 추세다.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원인은 농경지(農耕地) 감소, 육류와 가공식품 위주의 식생활 소비 패턴 변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51만2000ha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1.24% 감소했다. 쌀 소비량은 줄고 있지만, 육류 소비량은 1인당 60kg을 넘어 사료용 곡물 수입은 더욱 증가되리라 예상된다. 

 

2022년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조사에서 ‘식량안보 및 관련 정책 이행력’ 지표가 0점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물가 예기만 나오면 농축산물 수입을 통해 공급을 맞출 궁리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 1인당 칼로리(공급 영양소) 자급률도 30%정도이다. 또한 농지(農地)도 2008년 176만ha에서 2023년 154만ha로 22만ha가 사라져 식량안보는 바탕부터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토 대비 경지면적은 2017년 16.1%, 2018년 15.9%, 2019년 15.7%, 2020년 15.6%, 2021년 15.4%로 5년간 계속 감소했다. 미국은 같은 기간 경지면적을 보전했으며, 호주는 되레 늘렸다. 우리나라는 식량 생산기반이 약화하는 가운데 수입 농축산물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한국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311억7800만달러로, 2021년보다 56억7600만달러가 늘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국 5위 안에 들어 취약한 국내 식량안보를 방증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농업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일본은 2022년 1664억엔(1조4353억원)을 유기비료 생산 촉진 지원, 사료작물 생산 지원, 국내 공급망 구축 등에 투입했다. 즉 농산물의 자국 내 생산을 늘려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또한 일본은 쌀 등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면 정부가 농가에 증산을 지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식량공급 곤란 사태 대책 법안’까지 마련했다. 중국의 곡물자급률은 92.2%로 우리보다 5배정도 높은데도 곡물의 생산부터 저장과 유통 및 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면서 농지 전용(轉用)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Singapore)는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하지만 170여개 국가에서 식량을 탄력적으로 들여오고 국외 생산(growing overseas) 전략을 통해 식량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450만t의 밀과 1160만t의 옥수수를 수입하므로 지정학적 위기를 고려해 수입선 다변화, 효율적인 해외 곡물 유통사업 참여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2020년 ‘제1차(2020-2025)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세우고, 제2의 주곡인 밀 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025년까지 밀 자급률 5%(재배면적 3만ha, 생산량 12만t)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산 밀 판로 확보문제 등으로 재배면적이 오히려 감소해 올해 자급률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현실적인 자급률 목표 설정과 실효성 있는 우리 밀 판로 확보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공공비축 대상을 쌀에서 밀, 콩 등으로 확대했지만 밀과 콩의 재고율은 8-14% 수준에 불과해 FAO가 권장하는 곡물 재고율 17-18%(연간 소비량의 2개월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최소 6개월분의 식량 비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식량안보와 수급안정을 위해 국산 곡물의 비축 매입량을 확대하고, 식량 공공비축을 위한 물류와 저장 시설 등의 전략 비축기지 조성사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농산물 공급 부족에 따른 물가상승과 임금 불안을 상쇄하고자 기존의 농산물 수입 제한 정책에서 단계적 수입 자유화로 기조를 전환했다. 특히 UR(Uruguay Round) 협상이 7년만인 1993년에 타결되어 급격한 시장 개방이 이뤄지고, 2004년 칠레를 기점으로 전세계와 동시 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농산물시장 개방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우리 농업시장을 보호하던 관세장벽이 낮아지면서 저렴한 외국산 농산물이 국내시장에 물밀 듯 들어왔다. 1971년 60억달러에 못 미쳤던 농림축산물 수입액은 2022년 486억달러로 급증했다. 세부적으로는 농산물이 70배 증가해 298억달러에 육박했으며, 축산물은 110억달러로 846배 폭증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곡물자급률이 1964년 93.6%에서 2022년 20.1%로 곤두박질쳤다. 

 

세계 곳곳에서 극한 날씨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서 일부 농작물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는 세계 식량 수급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선 폭염 특보가 발표되고, 일부에선 폭우로 발생한 홍수로 재난사태가 선포되었다. 이같은 극단적인 날씨가 계속되자 미국 내 옥수수와 콩이 동부지역에선 고온 현상으로 품질 저하가, 중서부지역에선 폭우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널뛰기 기상 현상은 세계의 곡창지대로 알려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극한의 기상 현상이 이어지면서 세계 식량의 수급불안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은 옥수수 생산도 많이 하지만 세계 1위 옥수수 수입국이다. 중국의 옥수수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하면 세계 물가와 식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상기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해외 주요국들은 속속 식량안보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농업 지표는 곡물자급률과 경지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낮은 식량자급률, 쇠약해지는 생산기반, 높은 수입 의존도 속에 물가관리의 주요 방편이 된 농산물 수입이 국내 농업 체질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섣부른 농산물 수입은 농업 생산기반을 망가뜨릴 수 있다. 간척지 활용 다각화로 식량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 2008년 ‘세계 식량 위기’ 때 식량안보 차원서 식량자급률을 높이기로 하고 2027년 식량자급률 55.5%, 곡물자급률 27.0%를 달성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 목표는 해를 더할수록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중국은 곡물자급률이 92.2%이지만, ‘식량안전보장법’을 통해 자급자족(自給自足)을 기치로 한 식량안보 확보에 전력하고 있다. 식량안보는 국토방위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서도 맡길 수도 없으므로 우리도 하루빨리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빠른 과학기술, 빅데이터, AI 등을 기반으로 농업부문에 변화가 이뤄진다면 우리 농업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농업용 AI가 농부를 대신해 농작물 선택, 시비, 방제, 수확 등의 의사결정을 해주고, AI 기반의 농업용 무인 로봇과 드론이 직접 농사짓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본다. EP

 

pmy@sisaweekly.com

이코노믹포스트 박명윤 논설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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