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시스트, 주인 무솔리니를 물어뜯은 추억

주장환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9/09 [08:02]

[칼럼] 파시스트, 주인 무솔리니를 물어뜯은 추억

주장환 논설위원 | 입력 : 2024/09/09 [08:02]

베니토 안드레아 아밀카레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년 7월 29일∼1945년 4월 28일)

[이코노믹포스트=주장환 논설위원]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까지 가세해 쿠테타 설을 지속적 물고 늘어지자 국민의힘 인요한 최고위원은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작은 거짓말을 하면 국민이 몇 명 믿지 않는데, 큰 거짓말을 하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며 “(민주당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을 가지고 이슈화하는 것은 무솔리니 같다”고 했다.

무솔리니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히틀러와 함께 최악의 독재자로 손꼽힌다. 파시스트라는 괴물들을 키워 스스로 로마제국의 왕이 되고자 했다. 처음에 그는 사회에 불만이 있는 무정부주의자·사회주의자 등 200여 명을 끌어모아 전위대를 만들었다.

파시즘는 원래 고대 로마의 릭토르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권력의 상징으로, 도끼가 부조된 파시네(fascinae)를 들고 백성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무솔리니는 이들은 ‘전투 파쇼(Fasci di Combattimento)’라고 불렀다.

이들은 무솔리니를 근접 호위하면서 온갖 생떼와 횡포를 부렸다. 사실 파시즘이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멋대로 한다는 말이다. 자기편은 무슨 짓을 해도 감싸고 지원하지만 적들은 무조건 단호하게 응징하고 거부한다. 그가 양성한 ‘검은 셔츠단’은 오늘날 정당에 기생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목줄을 잡아쥐고 흔드는 팬덤그룹과도 같다. 무솔리니는 이들로부터 재미를 많이 봤다. 이들의 선동과 무솔리니 자신의 탁월한 스타카토 식 언변술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후세 평자들은 “무솔리니의 태도는 연극조로 과장되어 있었고 생각은 모순투성이였으며 인용은 정확하지 못했고 악의에 찬 공격들은 방향이 어긋나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에도 그의 생동감 넘치는 말과 열정적인 제스처는 군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감탄했다.

그는 이런 세력들에 힘입어 총리가 되어 그가 원하던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파시스트 당원들이 의회를 장악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선거법(Legge Acerbo)을 통과시키고 부정선거로 친정체제를 만들어 1인 독재체제를 완성했다. 이후 그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히틀러와 손을 잡고 제국의 환상을 재실현하기 위해 프랑스 전선에 개입했다. 이후 그리스를 침공하는 등 갖은 객기를 부렸지만 1943년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 상륙하면서 그의 추악하고 더러운 운명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자신을 로마 황제처럼 떠받들던 파시스트들에 의해 쫓겨났다.충견에서 맹견으로 변한 이들은 무솔리니의 총리직을 박탈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파르티잔에게 잡혀 죽은 그의 마지막도 더러웠다. 정부(情婦) 클라레타 페타치는 그와 함께 하겠다며 달라붙었다. 두 사람은 처형대에 거꾸로 매달려 땅에 대고 작별을 고했다.

우리 정치권에도 이런 파시스트들이 존재한다. 제멋대로 말을 만들고 거짓을 양산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혼란은 이들에게 축복이며 공유된 증오는 멋진 선물이다. 그러나 이들의 태생이 그렇듯 언젠가는 주인을 물어 죽인다. EP

jjh@economicpost.co.kr

이코노믹포스트 주장환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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